" 안녕, 좋은 아침...이네. 그렇지? "
다리우스가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는 폐병원의 문을 열었다. 슬슬 여름이 되어가는데도 서늘한 바람이 훅 불었다. 내가 이딴 직장 그만두고 말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만두지 못한지도 3년이 넘었다. 간호사는 여전히 처참한 몰골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뇌사 상태에 가까운 이 간호사는 말을 걸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마치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사람처럼. 하지만 신경줄이 얇은 다리우스에겐 이런 말산대가 딱 좋았다. 다리우스가 간호사에게 문을 열어주어 간호사를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아침공기에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그러고 5분 후, 다리우스는 가운을 고쳐 입으며 간호사를 살살 뒤에서 밀었다. 일하러 가야지.
" 어제는 어땠어? 나는 어제 저녁에... TV쇼를 보면서- 샐러드를 먹었어. 그제 새로 시작한 TV쇼였는데, 썩 나쁘지 않았거든. 샐러드는 요즘에 어... 맥신이 나보고 좀 살이 찐 것 같다고 해서 말이야. 조금 관리하려고 먹기 시작했어... "
다리우스는 주절거리면서도 착실히 간호사를 밀어 폐병원으로 넣었다. 오픈 시간 까지는 20분. 오픈하자마자 폐병원에 올 사람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조금의 여유시간은 더 있는 셈이었다. 다리우스는 간호사를 의자에 앉히고 그 옆에 앉았다. 간호사는 여전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다리우스가 잠시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에 다리우스가 이 간호사를 보았을 때, 그만 속에 있는 것들을 게워낼 뻔 했었다. 아예 없는 반쪽 턱, 그나마 남아있는 것도 겨우 매달려 있는 모양새로 그 때문에 혀도 내뺀 채로 온통 피투성이. 휘청휘청 걷는 몸. 당장에라도 스러질 것 같은 모습에 다리우스는 죽음을 보았다. 헛구역질을 하는 다리우스에 데일이 마뜩찮다는 시선을 보냈었다.
' 잔인한거 잘 본다며? '
미디어의 잔인함과 현실의 잔인함이 같을리가요! 다리우스는 데일에게 욕짓거리를 퍼부울 뻔 했으나, 그는 놀라운 인내심으로 참아내었다. 속에서 치미는 구역질을 포함해서. 빠른 시일 내로 그만둬야겠어. 입사 첫날부터 그리 다짐했다. 그리고 몇년이 지났고, 다리우스는 퇴사를 못하였으며 이제 이 간호사에게 친숙함을 느낄 지경이 되었다. 다리우스는 다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제 멋대로 말을 이어나갔다.
" 솔직히 여기 처음 입사했을 때는 어떻게든 되는 줄 알았어... "
처음에 간호사를 보았을 때, 지나치게 많이 피가 묻어있어 다리우스는 그것을 지워주려 했었다. 호러테마이니 너무 많이 닦는 것은 안 되겠지. 말라붙은 피는 잘 지워지지 않았으나 최대한 지워보았는데, 다음 날 웃는 카우보이가 간호사를 훑어보고 다리우스를 슥 보며 비뚜름 웃던 것 아닌가. 마치 비웃듯이. 하찮은걸 보듯. 그는 금새 기분이 나빠져 그의 담당자인 미첼을 불렀더랬다. 그리고 또 그 다음날 거의 티도 나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데일이 어찌 알았는지 그에게 비연기자의 '분장'을 건드리지 말라며 잔소리를 했었다. 그렇게 다리우스의 첫 친절이 무너졌다. 입사 4일차에 상사에게 찍혔나 싶어 정말 어떻게든 되는 줄 알았다.
" 근데 어쩌다보니 몇년 째 이러고 있네... 빨리 그만두던가 해야하는데. "
에휴. 다리우스가 한번 더 한숨을 내쉬고 간호사 쪽을 보았다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간호사가 그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허공을 보는 것 같았지만 다리우스는 왜인지 그가 자신을 보고 있단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전에도 몇번 이런 일이 있었다. 그가 그만둔다고 진심을 담아 말할 때라던가, 내일은 잠깐 쉬어야겠다고 하던 때라던가, 아니면 카우보이의 재수 없음에 관한 이야기들을 할때면 간호사는 그가 있는 쪽의 허공을 보고는 했었다. 그럴 때마다 다리우스는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고는 했다. 거의 뇌사 상태에 있으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다리우스는 제 쪽을 보는 간호사를 애써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 솔직히 네가 싫다던가 한 건 아니야... 너는 다른 비연기자들에 비해 얌전한 편이고... 좀... 무섭게 생기긴 했지만 그- 인형탈 괴물 보단 아니고... "
다리우스는 괜히 변명들을 늘어놓으며 주절거렸다. 간호사의 시선이 그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다리우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듣고 있는걸까? 다리우스는 확신할 수 없었다. 다리우스는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 그리고 그- 너스 복은 좀 불편할텐데... 조금 미안하네. 데일이 허락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어... "
놀이공원의 간호사 복은 실제 간호사와는 무관한 복장을 사용한다. 그러니까, 바지가 아니라 치마란 의미였다. 허벅지까지 올 정도의 간호사복은 다리우스가 보기엔 좀 짧아보였다. 겨울에는 추워보였으며, 여름에는 갑갑해보였다. 심지어는 간호사가 잘 움직이지 않으니 그 속을 보려고 고개를 수그리며 킬킬거리던 손님들도 있었다. 물론 이런 손님같지도 않은 것들은 다리우스가 특수 장치를 켜서 그들을 놀래켜 내쫓아버렸지만... 그래도 다리우스는 간호사가 그런 일들을 당하는게 싫었다. 아무리 뇌사상태에 가깝다 하더라도 일단은 인간들 닮아있으니 왜인지 그가 더 기분이 나삤다. 무엇보다도, 이건 기본적인 예의에 어긋나는 짓이었다... 간호사가 예의에 대해 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러한 이유로 다리우스는 간호사의 옷을 바꿔주려고 한 적이 있었다. 이것이 그의 두번째 친절이었는데, 간호사의 치수를 잰 뒤(앤이 재밌겠다고 도와주었다.) 옷을 산 것 까지는 일사천리였다. 다만 옷을 갈아입히는건 차마 다리우스가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앤이나 맥신, 혹은 캐롤라인에게 부탁하려고 말을 꺼낸 것을 데일이 들어버려 '비연기자들에게 너무 많은 신경을 쓰지 말라'라며 한소리를 들었더랬다. 그렇게 그의 두번째 친절도 좌절되고 말았다.
" 혹시 나중에라도 필요한게 있으면 말해줘. 너는... 물론 말을 못하지만-... 어, 나름... 직장 동료...잖아? "
다리우스가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약간의 변명과 함께 다른 말들을 하려던 때에, 놀이공원의 개장을 알리는 노래가 들렸다. 일 해야할 시간이었다. 당장 올 손님은 없겠지만 그래고 간호사는 제 자리에 새워둬야 데일에게 혼날 일이 없겠지. 다리우스가 손을 뻗어 간호사를 잡아 일으키려던 때, 간호사가 먼저 다리우스를 잡았다. 차갑고 딱딱한 손에 제 손이 닿자마자 다리우스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만 같았다. 간호사의 악력은 평소보다 강했다. 평소라기엔 간호사는 주로 뭔갈 잡은 적이 거의 없기는 하지만, 다리우스가 느끼기엔 그랬다.
" 뭐, 무- 무슨... "
당황해서인지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다리우스는 이번에야말로 간호사가 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식은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어두운 폐병원에 서늘한 공시 때문에 뒷목에 털이 쭈뼛서고 체온이 점점 내려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정신이 아찔했다. 다리우스가 얇은 신경줄을 끊어지지 않게 어떻게든 유지하는 동안 간호사는 스스로 일어났다. 1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다. 다리우스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나마 나아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제 손을 힘있게 잡은 것은 처음이라 조금 당황했을 뿐이다. 다리우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간호사의 손을 떼어내었다. 간호사는 순순히 손을 물려주었다.
" 가, 가자. "
다리우스는 말을 더듬거리며 간호사를 천천히 밀었다. 말라붙은 피에선 더이상 악취도 나지 않았으나, 다리우스는 그 검붉은 피를 보자 다시 한번 침을 꿀꺽 삼켰다. 제 심장 박동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언젠가 이 직장, 정말로 그만두고 말겠어. 다리우스가 중얼거렸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간호사가 고개를 휙 꺾어 다리우스는 중얼거림을 비명으로 끝마칠뻔 하였으나, 어찌저찌 이상한 소리로 비명을 막기는 했다. 다리우스는 간호사를 제 위치에 세워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침부터 몇번째 한숨인지.
" 너 정말 내가 하는 말을 듣는거야? "
다리우스는 제가 간호사에게 무슨 이야기들을 했는지 떠올렸다. 꽤 부끄러운 헛소리들도 많이 했던 것 겉은데. 그 딴 말들은 트위터에나 써 재낄걸! 본인의 의지가 없어보이길래 당연히 말도 못듣는 줄 알았다. 물론 가끔 의심되는 순간이 있기는 했지만, 이번 만큼 또 의심되는 경우는 없었기에... 다리우스는 간호사에게 몇마디 더 물어보다가 그 어떤 반응도 돌아오지 않자 입을 꾹 다물었다. 제가 바보같아졌다고 여긴 탓이었다. 역시 못 듣는 것 같은데.
" 좋아, 알겠어. 일단 여기 얌전히 있어야 해. 알겠지? 손님이 들어왔는데 네가 없으면 그것대로 곤란할테니까... "
다리우스는 거의 혼잣말에 가까운 말들을 주절거리며 그 또한 제 위치로 갔다. 오늘은 저녁으로 피자를 먹어야겠어. 필요하다면 술도 함께... 자기관리는 개나 주라지... 이런 직장에 다니는데 어떻게 그러겠어... 다리우스는 아침 10시도 안 된 시각부터 저녁 먹을 생각을 하며 다시 한번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네가 내 말을 정말 듣는거라면 제발 날 놀래키지 말아달라고 꼭 꼭 당부하고 싶다. 다리우스는 벽에 머리를 기대었다.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졌지만, 아마 기분탓이리라.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