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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yptic park

사랑을 위한 춤

본래 멀베리가 하던 일은 멍하니 서 있는 것이었다. 계약인지 뭔지 때문에 지상에 나와있기는 하나, 딱히 뭔가를 해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멀베리는 그래서 소란스러운 축제 속에도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인간들은 축제 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왜 춤을 추는건지 멀베리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닥 이해하고 싶은 영역도 아니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한 여인. 멀베리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당시 기준으로 멋드러지게 옷을 차려입은 인간이었다. 그 사람이 손을 내밀었다.

 

" 왜 그렇게 가만히 서 계세요. 축제인데 즐겨야죠! "

 

멀베리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제게 손을 뻗는 이 인간은 연약하고도 하찮아서, 그가 원한다면 이 인간의 심장을 파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순진한 표정으로 단지 이 손을 잡으라며 그를 채근할 뿐이었다. 멀베리는 인간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보다가, 곧 워린의 말을 기억해냈다. 인간들 눈에 크게 띌 행동은 하지마. 워린은 그들 중 가장 오래 산 자였고, 그렇기에 명령을 거역하면 멀베리에게만 불이익이었다. 멀베리는 워린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손을 잡았다.

 

" 춤은 출 줄 아세요? 모르시면 제가 알려드릴게요. 일단은 바닥을 보시고, 제 움직임을 따라 움직이시면 돼요. "

 

인간이 발을 움직였다. 멀베리는 기계적으로 몸을 따라 움직였다. 한쪽 팔은 제 허리에 올리시고, 다른 한 쪽은 제 손을 잡으세요. 좋아요. 하나, 둘, 셋 하면 한바퀴 도는 거에요. 잘 하시네요! 완벽한 회전이었어요. 그러니까- 제가 아는 한은요. 원레 춤 배우셨었나요? 말이 많은 인간이었다. 멀베리는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으며 몸을 움직였다. 무료하고 건조하다. 이 모든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생산성도 없는 이런 행동을... 멀베리는 지루함 때문인지 제 존재감을 드러내는 심장 박동소리를 들으며 발을 움직였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곡선이 퍽 마음에 든다고 생각하며. 하지만 무료하기 짝이 없는 멀베리의 표정을 보고 인간은 멋대로 오해한 듯 싶었다.

 

" 어-음... 혹시 혼자 추는걸 더 좋아하세요? "

 

그리곤 인간은 멋대로 발레를 알려주었다. 그는 원래 발레를 하던 인간이었던 듯 했다. 신나고 경쾌한 음악. 그리고 발레. 발레는 본래 배우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고 여겨지는 영역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섞인 축제장에서 그 둘은 단연 눈에 띄었다.

 

자, 그리고 다시 턴!

인간은 좋은 강사였다. 그가 멀베리에게 춤을 가르쳤다. 그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멀베리에게 천년에 나올까 말까 한 천재일 것이라는 찬사를 보내왔다. 발레리나를 해보는건 어때요? 멀베리는 답하지 않았다. 다만 심장 박동 소리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여전히 아무것도 이해 못한 채로.

 

그럼 이번엔- 뛰어볼까요?

인간은 자주 찾아왔다. 멀베리가 마음에 든 것 같았다. 그에게 춤을 가르쳐주기 위해 매일같이 찾아왔고, 멀베리는 여전히 춤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제가 왜 이 의미없는 행동을 배우고 있는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했다. 귀찮으면 그냥 이 인간을 죽여버림 그만인 것을. 그런데 왜? 멀베리는 이해하지 못한 채 행동을 이어갔다. 적어도 그 날 까지는 그랬다. 원, 투. 턴. 그리고 점프! 인간이 다리를 벌려 점프했다. 그리고 발 끝을 세워 땅 위에 섰다. 멀베리는 그 동작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눈을 깜박였다. 인간의 형태를 취할 때 형식적으로 생긴 속눈썹이 떨렸다. 멀베리는 그것을 따라했다. 그리고,

 

멀베리는 자유를 느꼈다.

갑갑한 곳에서의 해방, 무료함에서의 해방. 그저 땅에서 잠시 발을 떼었을 뿐인데. 단지 그랬을 뿐인데. 그리고 발 끝을 흙에 대었을 때, 다시 한번 턴을 돌고 마침내 두 발을 다 흙에 대었을 때. 멀베리는 평생토록 조용했던 그 심장이 비로소 울리는 것을 느꼈다. 인간의 몸을 본딴 신체가 인간의 신체마냥 반응했다. 눈이 조금 커지고, 근육이 수축되었으며, 얼굴 근육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웃을 줄도 아셨네요! 멀베리는 그제서야 제가 웃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심장이 뛰었다.

발끝이 오므라드는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희열의 파도가 멀베리를 집어삼켰다.

 

춤.

계속해서 움직이고 싶었다.

멀베리는 그제야 깨달았다. 제가 인간을 따라 춤을 배운 것은 제가 춤을 사랑했기 때문이노라고. 그래, 사랑. 멀베리는 뛰는 심장 박동을 박자 삼아 몸을 움직였다. 이것은 사랑이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할, 그리고 아름다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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